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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카바레트(Kabarett) 연구회

카바레트(Kabarett) 이해

 

카바레트에 대한 이해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고자 2가지 부분을 전제하고자 한다.
 
전제 1.
이하 카바레트의 개념, 발달사, 구성, 기능 항목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정민영 교수의 논문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2004, 2005)'를 전체적으로 올려놓아 일반인들이 전반적으로 카바레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의 독일어권 카바레트 연구는 독문학계에서의 접근으로 한정시킬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오늘 대한민국에 독일어권 카바레트(Kabarett)를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카바레트라는 장르의 한국내 전파와 발전에 있어서 분명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먼저 전제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카바레'라는 불어식 전통적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국카바레트연구회는 전제 2에서 제시한 바와 같은 이유에서 전통적 프랑스 카바레를 제외하고는 '카바레'를 '카바레트'로 바꾸었다.
 
전제 2.
1. 현재 프랑스의 카바레(Cabaret)와 독일어권의 카바레트(Kabarett)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일반인들이 가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차이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내용의 다양성, 표현방식, 특성과도 관계된다. 또한 한국에서의 연구는 전반적으로 독일어권 카바레트(Kabarett)에 관련된 연구이기에 우리는 '카바레'라는 용어를 전환하고 독일어 '카바레트(Kabarett)'를 사용한다.
2. 한국 내의 카바레가 가지는 이미지에 대하여 긍정적 카바레트 문화 이미지를 사회전반에 전파하기 위하여 독일어 '카바레트(Kabarett)'를 사용한다.
3. 우리 한국카바레트연구회의 김주권(KIMI)은 현재 독일 비스바덴과 마인츠를 중심으로 카바레트 공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독일카바레트박물관, 프룩수스, 파리저 호프테아터 및 독일카바레티스트협회 등과 관계하고 있다. 우리는 독일어권 카바레트를 한국에 전파 발전시켜 사회적, 문화적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바 당연히 '카바레트(Kabarett)'를 사용한다.
4. 우리 한국카바레트연구회는 카바레트를 단순한 풍자적 유머로서의 접근이 아닌 지성인을 위한 형이상학적, 심미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독일어권 카바레트 연구 (1) - 카바레트의 개념 및 발달사 - 정민영(한국외대)
 

이 논문은 2004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지원으로 작성된 것임 (과제번호: 2004-074-AM0127). 구체적인 작품 및 공연현장에 대한 소개, 분석은 연구원들의 공동연구를 통해 후속 논문으로 발표될 것임.
 
1. 머리말
공연예술 장르로서 카바레트 Kabarett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분야이다. 그러나 독일어권에서 카바레트는 한 세기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공연예술로서 어느 면에서는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전통적 공연예술 보다 일반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공연예술 장르보다도 카바레트는 동시대의 삶과 밀접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부터 정신적 가치관, 사회구조, 정치 현상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카바레트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드러낸다. 여기에 풍자와 유머를 통한 웃음은 필수적인 요소로서 교훈과 오락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한다. 동시대 삶과의 밀접성, 그리고 교훈과 오락의 동시성은 우선 카바레트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카바레트를 일상의 문화 현장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예술과 거리를 둔 카바레트는 하부 문화의 한 분야로 취급되었고 학문적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예술사에 있어서도 논외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독일어권에서 카바레트가 학문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20여년 내의 일이고 한국에서의 독어권 카바레트 연구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히펜 Richard Hippen이 1961년 개인적으로 마인츠에 독일 카바레트 자료보관소 Das deutsche Kabarettarchiv를 만들었으나 국가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 되어서였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오스트리아 카바레트자료보관소 Das ?sterreichische Kabarettarchiv는 1999년에서야 개인적으로 만들어졌고 2000년부터 그라츠 시의 재정지원을 받았다 (Vgl. http://www.kabarettarchiv.de/ Entwicklung.html, und http://www. kabarettarchiv.at/Ordner/institution. htm). 한국의 독문학계에서 독어권 카바레트에 관한 연구는 김광선의 다음 논문 이외에 전무하다. 김광선: 세기 전환기의 카바렛: 공연예술의 새로운 변화 - 프랑크 베데킨트 경우를 예로, 뷔히너와 현대문학, 7집, 1994, 53-79쪽.
 
그 동안 카바레트가 독일어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일상의 삶에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 공연예술 장르였음에도 학문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카바레트가 일시적인 정치 풍자일 뿐이며 카바레트 텍스트는 영구적 가치가 없는 즉흥적 텍스트이고 예술적 가치가 부재하는 저널리즘의 형식이라는 일반적 판단이었다. 그러나 카바레트는 독일어권에서 실재하는 삶과 직접 의사소통하는 공연예술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으며 그 예술사적 위치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 논문은 독어권 카바레트가 대부분 소극장 위주로 운영되는 한국의 공연예술계에 예술성과 대중성의 동시 확보, 소재의 활용과 다양한 공연양식, 배우들의 철저한 자기 인식에 생산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독어권 카바레트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분석하는 첫 단계로서 독어권 카바레트의 일반적인 개념 및 발달사를 정리한 글이다. 이는 한국에 생소한 공연 장르로서 카바레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선되어야 할 작업이라 할 것이다.
 
2. 개념 및 유형

카바레는 유럽에서 약 120년의 역사를 가진 독특한 공연 양식이다. 일반적으로 작은 예술 형식 Kleinkunstform으로 이해되는 카바레라는 명칭의 근원은 우선 부채꼴 모양으로 음식이 담긴 둥근 접시를 뜻하는 프랑스어 Cabaret 이다. Cabaret은 이후 그와 같은 음식 접시가 음료와 함께 제공되는 포도주집이나 음식점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미 중세 때부터 여행 중인 가수, 배우, 곡예사, 마술사들이 공짜로 음식을 얻어먹거나 약간의 여비를 벌 요량으로 손님들 앞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며 술집이나 음식점에 머무르는 일이 있었다. 이는 19세기에 들어와 작은 카페에서 샹송을 통해 손님들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동시에 최신 사건소식을 전하는 즉흥 공연의 형태로 발달했으며, 나아가 샹송은 당국의 여러 조치를 패러디하고 조롱하며 항의하는 내용을 담기도 하였다. 이로써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같은 유래에서 출발한 카바레는 일반적으로 작은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쉽고 가벼운 오락극의 형태로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노래와 패러디, 그리고 풍자를 통해 비꼬고 비판하는 공연 양식으로 이해된다. 카바레는 춤과 곡예가 주를 이루는 버라이어티 쇼로부터 그 다양한 혼합 형식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카바레는 여기에 머문 것이 아니라 시대 현상과 그 대표자 등을 일반의 삶 속에서 비판하고 논의하는 표현 예술로 발전했으며 그 표현은 때로 문학적, 시적이고 때로 연극적이고, 때로는 춤과 노래를 통한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공연 예술의 독특한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샹송과 에로틱한 요소를 가미한 노래, 사회 풍자시, 감각적이고 가벼운 패러디 형태의 발라드, 만담, 판토마임, 중국의 작품을 본보기로 한 그림자극, 모노드라마 등이 이용되는, 문학적이면서도 배우의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전형적인 표현 형식은 카바레의 공연 양식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이 같은 형식이 다양하게 어우러지는 공연은 모두 짧은 형식으로서 환상적이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를 반영한다. 카바레 공연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예술인 주점에서 이루어지는 사교형식의 발달, 그리고 낭만주의 이후 예술인 모임이 발달하면서 예술인 스스로가 등장해서 공연을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스스로 작품을 쓰고 연기하는 독자적인 예술가 카바레티스트 Kabarettist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카바레트는 구조적으로 연극에서 빌려온 장면, 단막극, 대화, 모놀로그의 여러 가지 형식들을 문학에서 가져온 시, 산문, 에세이의 형식, 그리고 음악의 범주인 가요, 샹송, 시사 풍자노래 등과 한데 묶어 하나의 공연을 이룬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풍자를 기반으로 한 문학 카바레, 정치-문학 카바레, 정치-풍자 카바레트의 다양한 유형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 패러디, 잘 알려진 시나 노래를 풍자적으로 우습게 개작하는 트라베스티 Travestie, 언어유희, 그리고 판토마임과 같은 시각적 효과들이 조화를 이룬다. 이 같은 카바레는 전통적인 유형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 기교 카바레트 Artistisches Kabarett
일반적으로 문학적, 풍자적 의도가 없이 대부분 관객들이 춤도 출 수 있는 나이트클럽 등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무대이다. 사이사이에 기교적이고 감각적이거나 외설스러운 노래가 제공된다. 이는 순수한 오락을 위한 카바레트라 할 수 있다.
 
2) 문학 카바레트 Literarisches Kabarett
독일어권에서는 프랑스의 예술인 주점을 모범으로 하여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 이후 작은 주점 무대와 카바레트극장이 형성되었다. 문학 카바레트는 대부분 대목장 가인들의 노래, 예술가곡, 샹송, 춤, 음악극, 단막극, 문학작품과 희곡작품에 대한 패러디, 그리고 때로 인형극으로 이루어지는 느슨한 혼합형식의 무대를 제공한다. 때로 작가들이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고 사회자의 잡담과 수다가 함께 했다. 초기엔 시대비판의 요소가 강했다. 특히 <11명의 사형집행인 Die Elf Scharfrichter>(뮌헨, 1901)은 서정시, 발라드, 풍자, 연극 장면의 패러디, 진지한 내용을 담은 간단한 연극, 인형극과 그림자극 등의 형식으로 동시대의 살롱문화와 속물근성, 시민들이 선호하던 오락극, 국가의 권위주의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연극 검열로 인해 이 시기의 카바레트들은 점차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경향성을 잃고 위트를 중심으로 한 오락성을 띠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문학 카바레트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라졌으나 1912년, 오스트리아 빈에 창설된 <짐플리시씨무스 Simplicissimus (Simpl)>는 그 전통을 여전히 유지하며 현재도 활발한 공연을 하고 있다. 이 유형의 카바레트를 공연했던 중요한 카바레트 극단으로는 위에 언급한 극단 이외에 다음과 같은 극단들을 들 수가 있다. (괄호 안은 창단지 및 창단년도)
<다채로운 극장 Buntes Theater> (베를린, 1901)
<울림과 연기 Schall und Rauch> (베를린, 1901)
<짐플리시씨무스 Simplicissimus> (뮌헨, 1903)
<카바레 밤의 불빛 Cabaret Nachtlicht> (빈, 1906)
<카바레 박쥐 Cabaret Fledermaus> (빈, 1907)
 
3) 정치-문학 카바레트 Politisch-literarisches Kabarett
1차 세계대전의 충격으로 많은 카바레티스트들은 문학적이고 시대비판에 충실했던 독일 카바레트의 근원을 인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역사와 진보에 대한 휴머니즘적 믿음을 앗아가 버렸다. 특히 발터 메링 Walter Mehring은 1919년, 막스 라인하르트 Max Reinhardt가 재창단한 카바레트 <울림과 연기>(최초 창단: 1901년)를 위해 작품을 쓰면서 예술적 비판기관으로서 카바레트의 철저한 정치화를 추구했다. 그는 또한 독일 내에서 이루어지던 유태인에 대한 정치적 논의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유주의 이념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추구했다. 이와 함께 예전의 문학 카바레트는 또한 막스 라인하르트의 영향으로 전쟁에서 귀향한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의 정치 연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정치 풍자를 중심으로 하는 카바레트는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기는 했으나 <거친 무대 Wilde B?hne>(베를린, 1921), <시험관 Retorte>(라이프치히, 1921)과 같은 카바레트들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다. 독일의 인플레이션이 끝난 후 걱정거리를 피하고 오락을 추구하는 관객의 취향으로 인해 정치-문학 카바레트는 외면 받았다. 1920년대 후반부에 노래, 춤, 풍자 등을 화려하게 엮는 레뷰 카바레트가 지배한 이후, 1920년대 말, 젊은 극작가들과 배우, 저널리스트, 화가들은 예술가들의 작은 무대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고 이 무대에 특히 두드러진 풍자의 특징을 부여하였다. 정치-문학 카바레트는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개별적으로 40년대까지도 맥을 유지했다. 여기에 속하는 중요한 카바레트 극장은 다음과 같다.
<작은 자유 Kleine Freiheit> (뮌헨, 1951)
<무대 가장자리 Die Rampe> (라이프치히, 1945)
<구즈베리 Die Stachelbeere> (빈, 1933)
<ABC> (빈, 1934)
<후추분쇄기 Die Pfefferm?hle> (뮌헨, 취리히, 1933)

4) 정치-풍자 카바레트 Politisch-satirisches Kabarett
시대를 비판하는데 앞장섰던 카바레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카바레트가 국가사회주의의 청산과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해 풍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을 때 구체적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60년대 중반, 카바레트의 정치 풍자는 현상비판에서 체제비판으로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성 극장 Rationaltheater> (뮌헨, 1965), <제국카바레트 Reichskabarett>(서베를린, 1965)가 대표적인 카바레트로 평가된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카바레트 또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젊은 관객들은 과도한 체제비판을 하는 카바레트가 큰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 시기에 카바레트의 정치적 기능과 효과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졌으며, 이제 관객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서 카바레트가 그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전쟁 이후, 중요한 정치-풍자 카바레트를 공연한 카바레트 극단은 다음과 같다.
<신선한 바람 Frischer Wind>(베를린, 1946)
<윤활유 Die Schmiere>(프랑크푸르트, 1950)
<다리미판 B?gelbrett>(하이델베르크, 1959)
<들쥐 W?hlm?use>(베를린, 1960)
<망치가수들 Die Hammers?nger>(베를린,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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